지장암부터 연기암까지 약 6km 구간
암자들마다 분위기 달라 감성 코스 인기
섬진강 지리산 어우려진 풍경 ‘쉼’ 만끽
막바지 남은 단풍 가을 정취 더해주기도

 

지리산 기운을 느낄 수 있는 7암자 순례길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시작해 연기암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화엄사 입구로 내려오는 암자순례길 거리는 6㎞ 남짓. 화엄사 원찰인 연기암을 포함해 일곱 암자를 돌아볼 수 있다. 사진은 연기암에서 내려가는 암자 순례길.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느닷없이 마주한 가을의 끝자락. “언제 오는지도 또 언제 가는지도 모르는 것이 세월이라고 하지만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왜 이렇게 야속한지 모르겠다.” 필자와 자주 만남을 갖는 한 70대 어르신께서 하소연 하듯 내게 던진 말이다.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40대에 막 접어든 나 또한 그런 생각이 문득 들긴하다. 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하루가 쓱 지나가 버린 허무함.

그러한 허탈함을 보상받고 싶지만 어리석은 나로선 딱히 방법을 찾지 못해 다시는 오지않을 지금 이 순간을 맥없이 흘려 보내 버린다.

그렇게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이고 있을 무렵. 우연히 찾은 화엄사 7암자 순례길은 무지한 범인이 순수함 가득한 동자승 만났을때 느끼는 환희의 순간 만큼이나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멀어지는 가을 손내미는 화엄사 암자들

화엄사순례길은 ‘지장암-금정암-내원암-미타암-보적암-청계암-연기암’ 등 일곱 암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객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순례길은 대충 6㎞ 남짓 거리인데 차가 다닐 만큼 길을 좋아 남녀노소 누구나 도전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기도 하다. 번뇌로 들어찬 중생들의 하찮은 근심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은 부처님 마음과도 같은 길이기도 하다.

지장암에서 곧바로 연기암까지 연결되는 순례길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올벚나무가 지키는 지장암

지장암은 화엄사순례길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암자다. 신발끈을 묶자 마자 마주치는 약간의 허탈함(?)을 주는 지장암은 시집간 새댁이 친정집 찾은 포근함을 준다. 마당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독대들은 뭔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스님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편안함을 안겨준다. 지장암을 살짝 돌아가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올벗나무를 마주하는데 엄청난 크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얼추 아파트 5층(약 3m 기준)에 달하는 높이에 둘레만 4m가 넘는다. 수령은 정확하진 않지만 350여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목질이 단단해 조선시대엔 주로 창과 칼자루 등을 제작하는데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 인조가 많이 올벚나무를 많이 심게 했다는 말도 있다.
 

금정암 샘물.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마음 속 근심 덜어주는 금정암

지장암을 지나 이름모를 나무들과 풀들을 벗삼아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마주하는 금정암은 마치 작은 성벽을 연상하는 듯한 풍채를 보여준다.

지장암 입구에 솟는 작은 샘물은 객에게 시원한 물 한잔 공짜로 건네는 시골 아낙네같은 정겨움을 준다.

금정암은 화엄사 여러 암자 중 구충암, 지장암과 함께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한 암자로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고요함 속에 들리는 목탁 소리는 항상 근심과 걱정으로 얼룩진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내원암의 루비와 지암 스님.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고요한 내원암

그렇게 또 한 걸음씩을 발길을 재촉하면 만나는 내원암은 왠지 모를 측은함이 가득하다. 앞선 두 암자들과 비교해 왜소하다는 싶을 만큼 작은데다, 덩그러니 앉아있는 부처상은 외로움을 한껏 머금고 있어서다. 마치 거울에 투영되는 나 자신의 자화상과 마주하는 듯한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적적한 암자에서 마주한 스님과 루비란 이름의 예쁜 강아지의 모습은 소소한 재미와 웃음을 준다.
 

미타암과 지장암은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이다. 사진은 미타암의 장독대 모습.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절집의 안락함 미타암

미타암은 비구니들이 수행처로 알려진 암자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대문을 지나면 인자한 웃음으로 서있는 3개의 부처석상과 복전함이 객을 마주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덧없는 욕심과 탐욕에 찌들었던 나를 꾸짓게 되는 듯 하다. 기와로 한껏 꾸민 아기자기한 요사채와 법당이 고요한 미타암의 또 다른 매력이다.
 

보적암 가는 길.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적적함 속 따뜻함 간직 보적암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고 뉘엇뉘엇 가다보면 보적암이란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돌비석과 마주친다. 보적암을 다다르면 길 양 옆으로 서로 뽑내듯 자리한 돌 무더기들이 고된 나를 향해 위로를 건넨다.

약 200m를 지난 만난 보적암은 조용한 산속 암자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나무(돌배나무) 한 그루와 졸졸 흐르는 샘물 하나. 보적암은 뭔가 손대지 않는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였다. 허영과 가식으로 찌들어 있는 이들을 향한 충고하는 훈계처럼 느껴졌다.
 

연기암 아래 자리 잡은 청계암이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단촐함 한껏 머금은 청계암

청계암을 향한 고요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늘을 덮을 듯하게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고 있노라면 늦장 빼는 게으른 평소 모습을 상기시키는 듯 해서다.

지리산 계곡물 음율을 따라 마주한 청계암은 심심함을 넘어 단촐함마저 느끼게 한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붉은 빛을 내는 형형색색 나무들을 배경삼아 앉아있는 청계암은 맑은 물 속에서 떨어진 한방울의 물감마냥 자태를 뽑낸다. 그만큼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 없다. 자연과의 조화로움은 7개 암자 중 최고로 칭할만 하다.
 

연기암 입구 돌탑.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연기암 마니차와 섬진강
7암자 중 불자와 길손이 가장 많이 찾는 암자는 해발고도 530m에 자리 잡은 연기암이다. 인도의 고승 연기 조사가 창건한, 화엄사의 원찰이다. 이곳은 섬진강과 구례가 어우러지는 풍광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이다. 연기암에는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하는 수행 수단인 황금색의 대형 마니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니차 안에는 불교 경전이 들어 있는데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마니차를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다고 간주한다.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섬진강 펼쳐진 연기암

순례길의 맨 끝자락에 자리한 연기암. 해발 500m가 넘는 이곳엔 도착하자 마자 이름모를 누군가가 쌓아 놓은 돌탑들이 자리하고 있다.

간절함을 담아 서있는 돌탑을 지나면 티베트 불교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마니차가 객들을 향해 인사를 건낸다.

화엄사 원찰은 연기암은 1500년전 백제 성황 때 인도의 고승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기 이전 최초로 토굴을 짓고 가람을 세워 법전을 설파한 역사를 품고 있다.

연기암에서 내려다보이는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은 그야말로 절경을 자랑한다. 여기에 10m를 훌쩍 넘는 문수보살 입상은 얼마나 인간의 존재가 작고 나약한지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자욱이 더해질수록 허무했던 그간 텅빈 마음도 어느덧 한껏 채워져 있을 것이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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