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률 작곡, 백기완 작사, 황석영 개사‘님을 위한 행진곡’은 김종률이 작곡하고, 백기완의 묏비나리를 황석영이 개사한 노래다. 김종률은 1979년 제3회MBC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으로 은상을 받았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된 전남대생 이훈우는 5년 후배인 김종률을 주목하고 스스로 매니저를 자청했다. 김종률은 이훈우로부터 소개받은 책을 읽고 여러 선배들을 만나면서 차츰 한국사회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그리고 곧이어 5·18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다. 절망의 도시 광주에서 김종률은 절망을 노래하고 작곡하기 시작했다. 1980년
■윤상원으로 되짚어보는 5·18항쟁(1)프롤로그-최후의 항전(2)윤상원과 김상윤의 만남(3)김남주와 카프카 서점(4)70년대 활동가들과의 교류(5)윤상원의 본격적인 활동(6)녹두서점(7)짧은 은행원 생활과 노동운동(8)광천동 들불야학(9)윤상원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10)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11)작전명 ‘화려한 휴가’(12)국민연합의 전국동시다발 시위 계획(13) 집단발포와 전라민중무장봉기(14)해방 광주(15) 총기회수와 재무장(16) 민주세력의 결집과 재무장(17) 민주시민투쟁위원회와 결사항전(18) 최후의 항전▶
■윤상원으로 되짚어보는 5·18항쟁(1)프롤로그-최후의 항전(2)윤상원과 김상윤의 만남(3)김남주와 카프카 서점(4)70년대 활동가들과의 교류(5)윤상원의 본격적인 활동(6)녹두서점(7)짧은 은행원 생활과 노동운동(8)광천동 들불야학(9)윤상원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10)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11)작전명 ‘화려한 휴가’(12)국민연합의 전국동시다발 시위 계획(13) 집단발포와 전라민중무장봉기(14)해방 광주(15) 총기회수와 재무장(16) 민주세력의 결집과 재무장(17) 민주시민투쟁위원회와 결사항전(18) 최후의 항전
(1)프롤로그-최후의 항전(2)윤상원과 김상윤의 만남(3)김남주와 카프카 서점(4)70년대 활동가들과의 교류(5)윤상원의 본격적인 활동(6)녹두서점(7)짧은 은행원 생활과 노동운동(8)광천동 들불야학(9)윤상원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10)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11)작전명 ‘화려한 휴가’(12)국민연합의 전국동시다발 시위 계획(13) 집단발포와 전라민중무장봉기(14)해방 광주(15) 총기회수와 재무장(16) 민주세력의 결집과 재무장▶(17) 민주시민투쟁위원회와 결사항전 ◇죽음의 행진5월 26일 새벽 4시경, 계엄군이 탱크
◇YWCA 항쟁파 지도부 구성과 보성기업 회의24일 오후 3시 ‘제2차 범시민궐기대회’가 시작되었다. ‘살인마 전두환’ 허수아비를 만들어 분수대 위에서 화형식을 하였다. 마침내 24일 오후부터는 이애신 총무께서 광주YWCA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게 되었다. 궐기대회 후 1만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도청 분수대에서 공용터미널, 광주역, 유동삼거리, 금남로5가를 거쳐 다시 도청 앞 분수대까지 돌아오는 가두행진을 했다.행진을 끝마치고 오후 7시경 광주YWCA로 돌아오니 신영일, 김정희 등 100여 명의 학생이 모여 있었다. 녹두서점을
■윤상원으로 되짚어보는 5·18항쟁(1)프롤로그-최후의 항전(2)윤상원과 김상윤의 만남(3)김남주와 카프카 서점(4)70년대 활동가들과의 교류(5)윤상원의 본격적인 활동(6)녹두서점(7)짧은 은행원 생활과 노동운동(8)광천동 들불야학(9윤상원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10)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11)작전명 ‘화려한 휴가’(12)국민연합의 전국동시다발 시위 계획(13) 집단발포와 전라민중무장봉기(14)해방 광주▶(15) 총기회수와 재무장 ◇총기 회수를 중지시켜야 한다5월 23일 오전 도청 내 학생수습대책위원회는 재야수습대책위
◇황금마차서 길거리 방송5월 22일 아침 윤상원이 일찍 녹두서점에 갔더니 이미 정현애 형수가 서점 문을 열어놓았다. 예비검속된 선배들 부인과 윤만식, 임영희, 김윤기, 김태종 등 극단 광대 그리고 임영희가 데려온 홍성담, 계속 녹두서점을 왕래하던 김영철, 정유아, 이행자, 김광섭, 이현철 등 여러 사람이 속속 녹두서점으로 몰려들었다. 김상집은 계속 전화를 받고 있었다. 뒷방에 들어가 앞으로 대책을 숙의했는데 의견이 엇갈렸다. 한쪽은 ‘지금 운동권이 한 명이라도 모습을 나타내면 광주 운동권은 모두 작살난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무차별 폭력에 칼·송곳 들고 대항상가 안까지 공수들이 들이닥쳐 겨우 담을 넘어 피신한 윤상원은 공수들이 사라지자 다시 한일은행 사거리로 나왔다. 공수들이 쓰러져 피범벅이 된 사람들의 다리 발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가 둘이서 다리와 손을 잡고 트럭에 던져 싣고 있었다. 길 한 편에는 잡힌 시위대들의 옷을 벗기고 팬티만 입힌 채, 무릎을 꿇려 이마를 땅바닥에 대도록 하더니 계속 곤봉으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이 끔찍한 광경을 본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수가 불어나자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그때 시위대의 선두에서 건장한
■윤상원으로 되짚어보는 5·18항쟁 ◇민주인사 예비검속과 민중항쟁5월 18일 아침 일찍 윤상원은 김상집에게 김상윤 등 민주인사들의 예비검속을 알리고 빨리 녹두서점으로 가 자리를 지키라고 알렸다. 박효선, 노준현, 임낙평과 함께 앞날을 걱정하고 있는데 박관현이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윤상원은 깜짝 놀라 누가 볼까봐 박관현을 데리고 골목 안 공터로 갔다. 골목 입구에서는 차명석과 김영휴가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윤상원은 박관현에게 전국에서 예비검속을 하고 있으니 우선 피신해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양강섭을 통해 연락하겠
◇노학연대- 전민노련 결성식5월1일 메이데이를 기념해서 1980년 5월1일 인천시 북구 계산동 홍진아파트에서 이태복, 김병구, 유동우, 양승조, 신철영, 박태연, 윤상원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민주노동자연맹 중앙위원회 결성식을 거행했다. 정관 등을 축조심의하고 조직방침, 당면투쟁원칙 등을 철야로 진행하고 축하회식을 가졌다.이 자리에서 윤상원은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기쁜 날’이라며 ‘동지들이 영원히 기억해주길 바란다’며 소리내력을 뽑아냈다. 동지들은 이구동성으로 ‘저 단정한 얼굴에 연극판에 올랐으면 대배우가 됐을 텐데’하며 박수치고 웃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의 출범‘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은 1978년 7월 4일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결성하기로 예정되었으나 결성대회는 당국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1978년 ‘통대’에서 체육관 대통령을 뽑기 전날 발기 대회를 하려고 했던 국민연합이, 1979년 3월 1일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약칭 민주통일국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하였다.한국기독교가 3·1운동을 본격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기미독립선언 50주년을 맞는 1969년부터다(정지강, 1984). 이를 주도한 단체는
◇이태복과의 본격적인 만남윤상원이 한남플라스틱에서 일하고 있던 중 이태복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일요일이었기에 시내 다방으로 나갔더니 함께 무등산에 가자는 거였다.이태복은 무등산 중머리재에 오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특히 당시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하던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약칭, 1976년 10월 결성된 단체) 조직에 대한 입장이 어떤지를 물었다. 왜냐하면 윤상원이 현장에 들어갔다가 생활 때문에 양동신협으로 이직했는데, 그곳에 식민지해방론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인사가 있어서 걱정이 된 것이다. 더욱이 양동신협
■윤상원으로 되짚어보는 5·18항쟁(1)프롤로그-최후의 항전(2)윤상원과 김상윤의 만남(3)김남주와 카프카 서점(4)70년대 활동가들과의 교류(5)윤상원의 본격적인 활동(6)녹두서점(7)짧은 은행원 생활과 노동운동▶(8)광천동 들불야학◇민주시민투쟁위 기획실장 김영철들불야학이 광천천주교회 교리실에 문을 열 즈음, 김영철은 광천동 시민아파트를 중심으로 빈민운동을 하고 있었다. 김영철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초대 교회로 불리우는 바닥교회 곧 기초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꿈을 지닌 젊은이였다.9급공무원에 합격하여 승주군 별량면사무소에서 잠
◇함평고구마 사건윤상원의 첫 직장은 주택은행 서울 봉천동 지점이었다. 그곳 가까운 곳에서 윤상원은 하숙을 했다.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하루종일 돈을 세고, 전표를 끊고, 퇴근 전에 결산을 하면 늦은 밤이었다. 그리고 하숙집에 들어와 잠을 자고 또 날이 새면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다. 가끔 주말이면 먼저 재보험회사에 취업한 황철홍과 농협에 입사한 김석균, 그리고 오래전부터 서울에 자리를 잡고 미아리에서 표구점을 경영하고 있던 고홍 등을 만나 대폿잔을 나누었다.어느 정도 은행원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광주에서 ‘함평고구마 사건’ 소식이
■윤상원으로 되짚어보는 5·18항쟁(1)프롤로그-최후의 항전(2)윤상원과 김상윤의 만남(3)김남주와 카프카 서점(4)70년대 활동가들과의 교류(5)윤상원의 본격적인 활동▶(6)녹두서점◇사회과학서적 은밀한 유통처1977년 9월 김상윤은 계림동 헌책방 거리에 녹두서점을 열었다. 신간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은 재정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었고, 우선 헌책방을 꾸리면서 형편 닿는 대로 사회과학 신간서적도 공급하여 사회운동에 일조하고자 했던 것이다.김상윤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이후 끊임없는 당국의 감시로 정상적인 생활 궤도를 찾기 어
■윤상원으로 되짚어보는 5·18항쟁올해는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이다. 올해 광주의 5월은 어느 때보다 화해와 평화 분위기가 뜨겁게 형성될 전망이다. 최근 광주시민들의 민주주의 외침을 총칼로 짓밟았던 고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잇따라 광주를 방문해 무릎꿇고 사죄했고, 5·18 유가족들은 힘껏 껴안으며 포용했다. 앞선 2월에는 (사)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와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공로자회가 함께 화해의 손을 잡았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가해자측의 잇따른 행보다. 이에따른 진실규명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이에 남도
올해는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이다. 올해 광주의 5월은 어느 때보다 화해와 평화 분위기가 뜨겁게 형성될 전망이다. 최근 광주시민들의 민주주의 외침을 총칼로 짓밟았던 고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잇따라 광주를 방문해 무릎꿇고 사죄했고, 5·18 유가족들은 힘껏 껴안으며 포용했다. 앞선 2월에는 (사)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와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공로자회가 함께 화해의 손을 잡았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가해자측의 잇따른 행보다. 이에따른 진실규명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이에 남도일보는 5·18민주화운동의 참 의미
다음달이면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는다. 올해 광주의 5월은 어느 때보다 화해와 평화 분위기가 뜨겁게 형성될 전망이다. 최근 광주시민들의 민주주의 외침을 총칼로 짓밟았던 고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잇따라 광주를 방문해 무릎꿇고 사죄했고, 5·18 유가족들은 힘껏 껴안으며 포용했다. 앞선 2월에는 (사)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와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공로자회가 함께 화해의 손을 잡았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가해자측의 잇따른 행보다. 이에따른 진실규명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이에 남도일보는 5·18민주화운동의
다음달이면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는다. 올해 광주의 5월은 어느 때보다 화해와 포용 분위기가 뜨겁게 형성될 전망이다. 최근 광주시민들의 민주주의 외침을 총칼로 짓밟았던 고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가 잇따라 광주를 방문해 무릎꿇고 사죄했고, 5·18 유가족들은 힘껏 껴안았다. 앞선 2월에는 (사)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와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공로자회가 함께 화해의 손을 잡았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가해자측의 잇따른 행보다. 이에따른 진실규명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이에 남도일보는 5·18민주화운동의 참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