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3)공양주보살

<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3)공양주보살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구름처럼 많은 스님들이 마당 가득 줄줄이 늘어서서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끊고 맑고 밝은 부처의 마음을 깨달아 고통 지옥에 시달리는 중생 구제의 대원력을 세우고 출가한 수행자들이기에 누군들 장육전 대불사의 화주를 맡을 주인공이 결코 없지는 않을 듯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천여 대중을 모조리 실험을 해도 결국 손에 밀가루가 하얗게 묻어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이렇게 아무런 기대에 대한 성과도 없이 끝나게 되자 계파선사는 마음이 답답했다.

지난밤 꿈에 나타나 말하던 신령스런 노인의 계시는 공허한 망상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래도 아직은 실망할 때가 아니었다. 출가하여 한평생을 용맹정진으로 수행한 고승대덕의 큰스님들이 줄줄이 그 차례가 남아있지 않는가? 적어도 일심으로 출가 수행한 노스님들 중에는 장육전 불사를 담당할 만큼의 큰 화주의 원력을 짊어질 경지에 이른 분들이 있지 않겠는가? 계파선사는 내심 속으로 커다란 기대를 하는 것이었다.

노스님들이 차례차례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손을 물 항아리에 넣은 다음 다시 밀가루 항아리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계파선사는 초조하게 노스님들의 손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모두 손에 새하얗게 밀가루가 묻어 나오지 않는가! 천여대중이 넘는 산내의 모든 사람들을 다 실험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실망의 빛이 얼굴 전면에 역력히 감도는 계파선사는 자신의 장육전 중건불사를 위한 백일기도가 이렇게 맥없이 끝나 버리는가 하는 깊은 회한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으음!……이 실험을 아직 하지 않은 이가 없을까?’ 계파선사가 이렇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속으로 헤아려보는 순간 공양간 앞에서 중년의 공양주보살이 캐온 봄나물을 다듬고 앉아있는 것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옳지! 저 공양주보살님은 아직 실험을 하지 않았구나!’

계파선사는 대중스님에게 일러 나물을 다듬고 앉아 있는 공양주보살을 불러오게 했다.

“저 공양주보살님을 얼른 불러 오시게나!”

산나물을 다듬다말고 공양주보살은 계파선사의 부름을 받고 황급히 달려왔다.

“선사님!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는가요?”

“다름이 아니오라 오늘 장육전 중건불사 발원 백일기도 회향 일인데 간밤의 꿈에 계시를 받아 화주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자! 공양주보살님도 한번 실험을 해보시지요.”

“선사님! 저 같은 일자 무식쟁이 공양 간에서 공양만 짓는 사람이 무슨……”

공양주보살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오! 큰 불사를 이루는데 서로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만물을 자비와 평등으로 대하는 게 우리 불제자의 기본 정신입니다. 어서 한번 해보시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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