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민주항쟁 34주년에 생각하는 개헌 논의
김덕모(호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덕모 교수

10일은 1987년 6·10 민주항쟁 34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해 1월 14일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 축소조작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던 민주화의 열풍은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 ‘박종철군 범국민 추도식과 고문추방 국민대행진’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던 4월 13일 독재자 전두환은 대통령특별담화의 형식으로 개헌논의를 중단하고 체육관 선거로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겠다는 호헌조치를 고수한다.

전두환의 호헌조치에 14일 김수환추기경을 비롯한 각계 민주인사들의 비판 성명이 나왔고 5월 18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을 폭로한 정의구현사제단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이 이어졌다. 이러한 투쟁은 전국의 재야지도자 2천200여 명이 함께 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호헌 조치 철회 및 직선제개헌 공동쟁취 선언”으로 나타났다. 6월 9일 민주화시위에서 최루탄 직격탄에 의한 연세대생 이한열군의 사망(7.5)과 일반시민과 넥타이 부대가 참여한 ‘6·10민주항쟁’으로 군부독재의 호헌조치를 무력화시키고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이처럼 박종철, 이한열열사와 각계의 민주인사, 넥타이부대 등 시민들의 노력에 의해 직선제개헌을 쟁취했지만 그해 12월 치러진 대선에서 민주진영의 야권분열로 노태우 군사정권 2기에게 권력을 헌납하는 우를 범했다. 이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공안정국으로 민주화세력을 탄압한 가운데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였고 이에 하나 뿐인 목숨을 건 민주열사들의 저항에 의한 ‘91년 5월 민주항쟁’으로 내각제 개헌을 막았기에 직선제에 의해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의 탄생을 맞게 되었다.

결국 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직선제 개헌이 오늘 민주정권 탄생과 한국민주주의 진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권의 개헌 논의와 내년에 치러질 대선의 여권 후보들에 의해 제기되는 대선 논의에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문재인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개헌논의를 시작했지만 원내의석 부족으로 활발한 논의를 주도하지 못했고 이후 ‘코로나19’ 비상상황으로 개헌 논의는 탄력을 잃고 지지부진하였으며, 범여권 180석이라는 거대여당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개헌 논의를 추동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사정을 감안할 때, ‘6·10민주항쟁’ 34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이낙연 전대표와 정세균 전총리에 의해 개헌 논의가 촉발됨으로써 여당내의 개헌논의 이슈가 재점화 된 것을 눈여겨 지켜볼만하다.

최근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권력구조 개편에 방점을 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안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 기본권 강화와 불평등 완화에 초점을 맞춘 개헌안을 들고 나왔다. 정 전 총리는 “4년 중임제로 헌법 개정을 성공시켜서 임기를 1년 단축할 용의가 있다”며 “대선 2년 후에 총선을 실시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져 바람직한 책임정치가 구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덧붙여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 중심의 외치를, 국회가 선출한 국무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도를 제시했다. 대통령 출마자격을 만 40세로 제한한 헌법 조항을 국회의원 피선거권 연령(만 25살) 수준으로 고치거나 폐지하고, 경제민주화와 토지공개념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헌법에 명시된 토지공개념을 강화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개헌안’을 강조했다. 선언적으로만 규정돼 있던 현행 헌법상의 토지공개념을 보다 구체화해 과거 정부에서 좌초됐던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헌법에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 주거권, 정보기본권 등을 신설하겠다고도 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피선거권 연령을 하향하는 데도 정 전 총리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경쟁 대선주자들의 개헌론에 대해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미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께서 먹고사는 문제로, 집 문제로, 취직 문제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며 다른 주자들의 개헌론을 일축한 바 있다. 이재명 지사는 개헌 문제논의 시점과 관련 “경국대전을 고치는 일보다 국민의 구휼이 더 중요한 시기”라며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여권 대선주자들에 의해 촉발된 개헌논의가 이슈 선점을 통한 국면전환용이 아니라 선거개혁과 민주개혁을 제도적으로 완성하여 ‘87년 6·10 민주항쟁’을 통해 되찾아 온 민주주의의 바람이 우리네 민생 곳곳에서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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