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평택임씨(平澤林氏) 순창군파 순창백 종가 <61>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담락재

동아시아에 빛나는 ‘충절’ 가문
‘충직’ 표상인 은나라 ‘비간’ 후손
8학사 임팔급 신라 귀화 평택 정착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동래시 남아
일곱형제 충신 기리는 칠충각 보전

화순천이 흐르는 전남 화순 다지리에는 중국 고대 은왕조의 후예로서 동방으로 이거해 가문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평택임씨(平澤林氏) 순창군파 순창백종가가 있다. 8조금법을 선포했다는 기자가 고조선으로 동래했듯 기자의 형 ‘비간’의 후손 역시 멸망 직전의 당나라를 떠나 동방으로 향했다. 당나라 한림학사 8인이 간신배의 모함에 빠져 어둔 곳에서 밝은 곳을 향해 바다를 항해했음이 연작시로 남아 있다. 국경을 초월해 ‘충절’의 덕목을 실천한 선조들의 전통을 잇고 있는 평택임씨 순창백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중국 은나라 왕족 후예 임견 득성
평택임씨(平澤林氏)는 중국 은나라 왕족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대표적 성씨다. 은나라 32대 태정왕의 왕자 비간의 아들로서 주나라 무왕에게 성명을 하사받은 임견을 도시조로 모신다. 소사(승상)를 역임한 비간(BC.1125~1063)은 은나라 마지막 왕 주왕의 숙부이고 기자의 형으로 폭정을 일삼는 주왕에게 주지육림을 멈추고 국정에 전념토록 직간을 지속했다. 이로 인해 포악한 주왕으로부터 심장을 도려내게 하는 형벌을 당해 사망에 이르고 후대 사람들로부터 충직한 현인으로 추앙 받았다. 폭군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 비간 일족을 찾았을 때 비간부인이 장림(長林)의 동굴로 피신해 아이를 낳아 길렀다는 사실을 알고 아들에게 임(林)씨 성과 이름 ‘견(堅)’을 내렸다는 임씨 성의 유래는 사마천의 사기에 전한다.

그의 84세손 임팔급(851~915)이 중국 복건성 팽성촌 출신으로 당나라 말 한림학사였는데 간신배의 모함으로 인한 화를 피해 동쪽나라 신라에 망명했다. 그와 함께 한반도로 건너온 8학사(유전, 송규 등)가 연작한 8언절구 시문이 전해진다. 신라 팽성(경기도 평택)에 정착해 김윤복의 딸 복주김씨와 혼인한 임팔급은 붉은 바지를 입은 도적떼를 소탕한 공으로 위화부시랑, 평택군에 올랐다. 이로 인해 그 후손 임씨는 본관을 평택으로 세계를 잇게 된다.

◇고려 명신·명문장가 배출
임팔급의 후손으로 평찰품사를 지낸 임몽주(?~?)의 아들인 임계미(?~?)는 고려 현종 때 문과급제하고 벼슬은 평장사, 삼중대광 태사에 이르고, 평원부원군에 군봉됐다. 임몽주의 8세인 임광비(?~?)는 문과 급제하고 동중서문화시중평장사, 좌의정을 역임했고 시호는 문정공이다. 그의 아들 임춘(?~?, 호는 서하)은 자연에 묻혀 사는 일곱현자로 알려진 강좌칠현 중 한사람으로 고려 후기 문인이다. 그는 유교 교양과 문학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무신의 난에 가문이 화를 입자 이인로 등 죽림고회 벗들과 시를 지으며 교유해 ‘장검행’ 등 명작시와 ‘국순전’, ‘공방전’ 등 소설을 통해 안분지기 군자의 도와 비운의 현실관을 묘사했으며, ‘서하선생집’ 6권과 동문선 오른 여러편의 시문을 남겼다. 예천 옥천사, 사직동 소원사 등에 배향됐다. 13세인 임중연(1303~1373)은 충숙왕의 원나라 체류를 보필한 공으로 밀직부사 첨의찬성사에 오르고 순창군에 봉해졌다. 그가 순창백 종가를 열었다.

◇‘두문 3절’ 임선미 충절 계승
종가 2세 임선미(1337~1394, 호는 두문재)는 고려말 태학사를 지내며 예법과 세속 개혁에 앞장섰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에 은거한 72명의 태학생과 함께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킨 고려 충신이다. 그는 조의생, 맹성 등과 두문3절로 알려져 송월사를 지어 추모하고, 표절사, 순창 호계사, 장성 경현사, 고려통일대전에 배향됐다. 그의 아들 임용배(?~?)가 효자로 알려졌고 순창에 입향했다. 4세 임치지(?~?)는 곧고 바른 품성과 고귀한 덕을 지키며 학문에 정진해 경학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세종 때 문과 급제해 남부교수를 역임하고 전남 화순에 입향했다. 5세 임회(?~?)의 아들 임철공(1476~?)과 그 동생 임수공(1479~?) 형제가 효자로 알려졌다.

10세 임시계(1588~1639)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형제 임시태, 임시민, 임시진, 임시준, 임시익, 임시약(1610~1673) 등과 의병을 일으키고 가산을 모아 군용으로 충당했다. 전주 이흥발과 함께 상경하다가 청주에서 적의 우두머리 9명을 참수하는 활약을 하고, 강화 소식을 듣자 충성을 다하지 못함에 통탄해 화순 어은동에 은거했다. 이 형제들은 훗날 고종 때 충신으로 인정받아 예조참의 등에 증직되고 칠충각 정려(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5호)를 세워 충절을 기렸다. 종가는 16대조 임회가 내려준 가훈 ‘효제충신 예의염치’를 지키며 가통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건중8학사 동도시>

임팔급 : 八人浮海兮 桂탁蘭檣 (여덟사람 바다를 건너옴이여, 계수나무 배에 난초 돗대로다.)
소인경 : 仙李運盡兮 賢士被讒 (당나라 운수가 다 함이여, 어진 선비가 참소를 입었도다.)
유 전 : 波濤闊矣兮 舟楫利逝 (파도가 넓음이여, 뱃길에 편히 가도다.)
허 동 : 吾徒東矣兮 可以免禍 (우리들은 동쪽으로 가니 가히 화를 면함이로다.)
송 규 : 接淅而去혜 謝暗投明 (파도를 조리질하며 떠남이여, 어둔 곳을 버리고 밝은 곳을 찾아가네.)
최 항 : 李老入海兮 殷道衰亡 (이씨 시대는 늙고 저물어 입해하누나, 은나라도 곧 망하리라.)
권지기 : 賢士出東兮 竭誠盡忠 (어진 선비가 동족으로 감이여, 충성을 다하리로다.)
공덕수 : 見機而作兮,疎廣之徒 (기미를 보아 행함이여, 소광과 같은 사람들이로다)
- 8학사가 바다를 건너며 읊은 시(평택임씨·강릉유씨 족보에 전승됨. 유씨 후손 유경상 정리)

송월사 전겅
송월사 사당
칠충각 전경
평택임씨칠충비와 칠충문
송월단
송월사 현판
담락재 현판
칠충문 현판
칠충각 판액. 임시익에게 충신 칭호와 함께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을 증직한 판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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