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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5)참혹한 인생사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5)참혹한 인생사
<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5)참혹한 인생사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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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가슴속으로 가득 밀려오는 답답함에 도무지 몸을 가눌 수 없었던 공양주보살은 억세게도 불운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해 보는 것이었다. 땅 한 평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 집에 붙어살며 온갖 궂은일이란 일은 혼자 도맡아 다해가며 살다가 나이 열여섯에 바닷가 가난한 어부에게 시집이라고 갔는데 이듬해 고기 잡으러 선주 따라 여수 앞바다로 나섰다가 남편 혼자만 물에 빠져 죽어버렸으니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다. 과부 신세를 한탄하며 젖먹이 어린 아들 하나 데리고 품 팔아 겨우 목에 풀칠하고 사는데 그 어린 아들마저 그해 여름 병마에 덜컥 잡아먹히고 젊은 여자가 혼자 못산다며 중신하는 이웃집 늙은 아낙의 말 따라 논 서 마지기 준다기에 나이 많은 먼 동네 영감 후실로 들어가 그 집 일곱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을 다 길러 주고 영감이 병으로 죽자 자식들이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내쫓아버려서 세상 바닥을 구르는 돌처럼 이리저리 사람들 발길에 차이는 대로 떠돌다가 마침내 찾아들어 온 곳이 이 화엄사 공양간이었다.

전생에 죄를 얼마나 많이 지었으면 이런 업을 뒤집어쓰고 사느냐 싶어 새벽에 스님의 도량석 소리에 깨어 일어나 부처님 앞에 나가 백팔 배를 하고 매일 공양 지어 올리고, 절 살림을 해가며 철 따라 나물 캐 무쳐 올리고, 삼밭에 무 배추 길러 김치 담아 올리고, 스님들 밥 지어 올리며 오직 배곯지 않고 사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면서 부지런하게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화엄사 절과도 인연이 다했는지 그 어마어마한 장육전 중건불사의 화주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자신이 떡하니 맡게 되었으니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는 그 말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렇다고 천여 대중 스님들 앞에서 피할 새도 없이 계파선사로부터 바로 화주로 정해진 터라서 어떻게든 부처님을 붙잡고 늘어지는 길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지엄하신 계파선사가 화주 소임을 딱 맡겨버린 판이라서 마음대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저녁 공양을 지어 올리고 공양 시간이 끝나자 공양주보살은 대웅전으로 홀로 들어가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단정히 앉았다. 부처님께 오늘 소임으로 맡은 화주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일심으로 기도를 올렸다. 멀리서 가까이서 밤새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새 산개구리들 우는소리가 시끄러웠다. 그 소리도 다 잊어버린 채 어느새 깊은 기도의 삼매경에 들어서 장육전 중건 불사의 일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일념을 집중했다.

그러나 그 일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가당찮은 일이었다. 밥 짓고 나물 장만하고 국 끓이는 허드렛일이나 할 줄 아는 자신이 수천억 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아아! 그것은 이 절에서 당장 나가란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공양주보살은 부처님을 응시하다가 그만 끝없이 세상에서 버림받아온 파란만장한 제 참혹한 인생사를 돌아보고는 그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깊숙이 떨구고 쓰러져 소리 없이 흐느껴 울고 말았다. <계속>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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