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1)백일기도

<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1)백일기도

그림/정경도(한국화가)
그림/정경도(한국화가)
화엄사 장육전 중건불사를 마음으로 결심하고 백일기도를 올리던 계파선사는 아침공양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지리산 위로 멀리 파랗게 열린 봄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철새들이 날아와 우짖는 지리산 계곡에는 그새 봄이 가득 몰려와 푸른 잎들을 너울너울 펼쳐 놓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맑은 바람이 따뜻한 온기를 품고 지나가고 여기저기서 피어난 봄꽃 향내 따라 벌 나비들이 분주히 날개를 파닥거렸다.

“허허! 지난겨울 하얀 눈이 온산을 뒤덮였을 때 장육전 중건불사 백일기도를 시작하였건만 그새 이렇게 꽃피는 봄이 되어 백일기도 회향(回向)을 맞이하는 날이 되었구나!”

눈썹이 새하얀 계파선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지난 밤 꿈을 떠올려 보았다. 웅장한 장육전 중건불사를 하려면 엄청난 재물이 들어가야 비로소 가능할 텐데 그 큰 불사에 대한 원력을 세우고 백일 용맹정진을 결심하고 일심으로 기도를 올렸으니 부처님께서 무어라 소식 한 가닥은 주시지 않겠냐고 내심 작정한 백일기도였다.

인도에서 온 스님인 연기조사가 지리산에 터를 잡아 백제 544년에 처음 이 산문을 연 이래로 훌륭한 고승대덕이 줄줄이 나와 중생을 제도하고 불법을 만방에 펼쳤으니 그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받아 장육전을 훌륭하게 중건불사(重建佛事)하여 내일의 화엄사를 기약하고 싶은 것이 계파선사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또한 지혜의 보살이신 문수보살의 가피가 서린 지리산 화엄사 도량인 만큼 낡고 초췌한 도량을 아름답게 정비하여 불도를 닦는 수행자나 마음 어지러운 중생들이 언제고 드나들며 맑고 바른 삶의 지혜를 배우고 평안을 얻어 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었기에 장육전 중건불사는 자신의 일생일대의 사업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발원으로 백일기도를 드리던 지난밤 잠깐 잠자리에 들었는데 언뜻 하얀 옷을 입은 신령스런 노인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그대 계파여, 고생이 많도다! 그대가 지금 세운 장육전 중건불사에 대한 대발원은 쉽게 이루어질 일이 아니니라! 그렇게 큰일을 이루려면 복 있는 화주(化主)를 내어 큰 시주자(施主者)를 얻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그러려면 대웅전에 물 담은 항아리와 밀가루 담은 항아리를 준비하고 먼저 물 항아리에 손을 담근 다음 밀가루 담은 항아리에 손을 넣어 빼보았을 때 밀가루가 묻지 않은 사람이 장육전 건립의 화주가 능히 될 수 있을 것이니라! 내 말을 명심하거라! 계파여!”

이렇게 말을 마친 신령스런 노인은 문득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순간 눈을 번쩍 뜬 계파선사는 이상스런 꿈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날짜를 짚어보니 마침 다음날이 드디어 백일기도 회향일이었다. 자신의 백일기도에 드디어 부처님이 답을 주신 것을 알아차린 계파선사는 묵묵히 그 꿈에서 준 계시를 실행하여 장육전 중건 불사를 할 수 있는 화주를 정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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