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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전주최씨(全州崔氏) 연촌파 연촌 종가 / 영보정 <60>

영암 전주 최씨(全州 崔氏) 연촌파 연촌 종가 / 영보정 <60>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500년 영보촌…충절·향약·항일로 잇는 명문가
전주 최씨 중랑장공계 후손 번성
성리학 계보 잇는 큰학자 최덕지
직제학 내려놓고 낙향해 존경받아
영보정·존양루 국가보물 전승보존

영암 영보정(보물 제2054호)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 (보물 제594호)
영암삼성당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64호)
영암 녹동서원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3호)

전남 영암 백룡산 형제봉 자락에 있는 영보촌은 명산 월출산 앞 기름진 들판을 안고 영보역이라는 교통의 요충지에 입지해 전통시대 향촌 문화가 집합하고 확산하는 중심지였다. 이곳에 영보정을 건립하고 동계 향약을 통해 미풍양속과 향촌자치를 가꿨던 영암 전주최씨(全州 崔氏) 연촌파 종가를 찾아 종가보전 보물에 얽힌 충절 사연과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고려 문하시중 최아를 시조로
전주를 본관으로 하는 최씨는 문성공 최아, 문열공 최순작, 사도공 최균, 문충공 최군옥 등이 각 계파의 시조다. 전주 최씨 문성공계는 고려 충숙왕 때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낸 완산군 최아를 시조로 모신다. 경상도안렴사 최용생, 검교대호군 최용각, 판사 최용갑, 중랑장 최용봉 등 최아의 네 아들 대에서 각각 안렴사공파, 대호군파, 판사공파, 중랑장공파로 분파했다. 넷째 최용봉의 후손들이 번성해 문과 41명, 무과 67명, 생원진사시 84명이 합격하는 명문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4세 최담(1346~1434)은 고려 문과에 급제하고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으로 집현전 직제학을 역임했으며, 전주에 낙향해 한벽당(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을 짓고 학문하며 여생을 마쳤다. 그의 아들인 5세 최덕지(1384~1455, 호는 연촌, 존양)는 양촌 권근의 문하에서 공부해 문과급제하고 사관이 됐으며, 교서관정자, 사헌부감찰, 김제군수, 남원부사 등을 역임하고 처가인 전남 영암의 영보촌에 낙향해 학문연구에 몰두하다가 문종 즉위 후 예문관직제학에 올랐다. 흉년에 고통받는 백성에게 구휼미를 베풀기 위해 논공법이라는 세법을 상소해 세종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최덕지가 연로함을 이유로 사임하자 사육신 등 당대 석학 28인이 노량진나루터에 나와 시로써 덕을 칭송하며 송별했다고 한다. 그는 영암에서 도학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다 여생을 마쳐 존양사에 제향됐다. 존양사에 대해 훗날 숙종은 연촌의 도학이 주자와 같다하여 중국 백록동서원의 ‘녹동’을 사액해 그를 녹동서원에 주벽으로 모시도록 했다.

◇존경받는 성리학자 최덕지 입향
10세 최언청(?~?)은 가학을 이어 생원시에 합격하고 승의랑에 올랐다. 그의 아들 최낙수(1525~?)와 최희수(1530~?)가 모두 생원시에 합격해 가문을 빛냈다. 그들의 동생 최미수(1541~?)도 무과에 급제해 군수를 역임했으며, 최덕지 영정 봉안과 영당 사당 마련에 기여했다. 최낙수의 아들인 12세 최정(1568~1639)은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해 관직에 나갔고, 퇴임 후 낙향해 가문을 위해 헌신했다. 종가조 최덕지의 영정을 단장했으며, 존양사를 건립하고(1630년), 영보정을 중건했다(1635년). 그는 최덕지의 시문을 모아 ‘난후문고수록지’를 간행했다.

종가를 연 최덕지가 남긴 유물과 종가 보존의 건축물들은 보물문화재로서 국가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았다.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은 전신을 그린 초본의 특성과 조선 전기의 초상화 화풍 및 복식사 연구에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보물 제594호로 지정됐다. 최덕지와 그 사위 신후경(거창신씨)이 지은 ‘영보정’은 정유재란 때 소실됐지만 후손 최정, 신천익 등이 중건해 역사성과 조형미, 기술성 등으로 보물 제2054호로 지정됐다. 전주 최씨, 거창 신씨, 남평 문씨(입향조 문맹화는 최덕지의 외손녀 사위)가 집성촌을 이루는 영보촌의 동계 향약 집회소였던 영보정은 합경재에 보존한 동계 자료와 함께 가치가 높은 문화재다. 석봉 한호(1543~1605)가 영보 출신 서예가 신희남의 문하생이고 문익현(문맹화의 증손)의 스승인 점을 들어 영보정 현판은 영보촌과의 인연이 있는 한석봉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영보촌 항일만세운동으로 충절 계승
26세 최동림(1909~1948)은 일제 하 1932년 소작쟁의 때 영암 형제봉만세사건을 주동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다. 만세사건은 영보촌 뒷산 형제봉에 구림, 장암 등 영암 농민 100여명이 집결해, 일본인이 강탈한 논밭의 반환을 주장하며 경찰서로 행진하다 70명이 체포돼 구속된 사건이다. 영보정에 설립된 영보학원(1921년)에서 항일정신을 배양하던 영보청년회 10명의 회원들은 재판이 열리는 대구법원까지 자전거로 찾아가 의기를 떨치며 돌아왔을 정도로 충의정신이 생동했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최덕지가 강학했던 장소인 존양루는 15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현판은 안평대군 친필로서 해동명적에 올랐다고 한다. 존양루에는 최덕지가 낙향할 당시 노량진에서 송별했던 류성원(‘유미사송최선생’ 동문선 수록), 이개, 하위지,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김종서 등 28인의 송별시가 현판으로 보전됐다. 녹동서원에는 최덕지의 연촌유고, 최충성의 산당집, 김수항의 문곡집, 임억령의 석천집, 강항의 강감회요 등 목판 총 1천329판을 보존했었으나 고종 때 서원이 훼철되자 종가가 판각을 세워 보존했고, 이 목판 및 고문서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됐다. 수은 강항의 강감회요 총653판도 보존해 오다가 영광 내산서원에 관장토록 했다(1973년). 최덕지의 외손자 신산정이 거처하던 삼성당고택도 전남지방 부농가옥의 전형으로 인정돼 국가민속문화재 제164호(최성호가옥)로 지정됐다. 종가는 영보정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출향인사들까지 참여하는 풍향제(KBS 전국100대 향토문화축전 선정)를 행하며 유형무형의 유산을 전승하는데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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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정 (보물 제2054호)
최덕지초상및유지초본(崔德之肖像및油紙草本)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 (보물 제594호)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이미지
문간채에서_바라본_안채와_사랑채
영암삼성당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64호)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이미지
판각
영암 녹동서원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3호)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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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경재 판각. 문화재로 지정된 목판 및 고문서류를 보존했던 합경재 내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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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정 전경. 1630년 중건해 오랫동안 동계(洞契)의 회합장소로 사용되었던 향약 정자로서 역사성·조형성·기술성과 독특한 건축양식의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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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정 현판. 조선 명필 한석봉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석봉 한호가 영보촌의 신희남에게 배우고, 문익현에게 가르친 사제의 연을 맺었기 때문에 최씨, 신씨, 문씨가 공동운영하는 영보정에 현판 글씨를 남겼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학계의 견해가 있다. 전문가의 고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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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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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경재의 합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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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루 현판. 안평대군의 글씨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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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양루. 낙향한 최덕지가 학문하며 강학했던 장소.

서정현 기자  ndpl@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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