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5화>명당과 아기장사 (22)지인무기(至人無己)

<제5화>명당과 아기장사 (22)지인무기(至人無己)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장자는 그런 충실한 자들을 비판했던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교묘히 빙자하여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권력과 지위와 재물만을 취하는, 간교한 자들이 득세하는 수많은 가짜들을 보았고 그것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맹자는 놓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결국은 맹자나 장자는 방법만 달랐을 뿐 똑같은 고민을 했고, 최종지점에서는 합일(合一)을 이루는 것이었다. 장자는 노담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이어서 적었다.

양자거가 ‘밝은 왕의 다스림’에 대해 묻자 노담은 ‘밝은 왕의 정치는 공(功)이 천하를 뒤덮어도 자기가 한 일로 여기지 않고, 만물에 교화를 널리 베풀어주어도 백성들이 느끼지 못하고, 알아도 이름을 일컫는 이가 없고,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기뻐하게 하여 헤아릴 수 없는 곳에 서서 무(無)의 세계에 노니는 것이다.’ 라고 답한다. 이러한 도가의 무위자연의 경지가 유교의 이민위천(以民爲天),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선비정신과 절대로 다르지 않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또 응제왕 편에서 미치광이 접여 이야기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견오가 묻기를 ‘군주된 자가 자기 스스로 마땅한 법식과 올바른 법도를 실천하면 사람들이 어찌 감히 그것을 따르고 교화되지 않겠는가?’라고 하니, 미치광이 접여가 ‘그것은 거짓된 덕이다. 그런 것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바다를 맨발로 건너고, 강을 맨손으로 퍼내며, 모기에게 산을 지게 하는 것이다.’라고 일갈한다.

장자는 인위적인 형식의 틀을 온몸으로 거부하였고, 소위 똑똑하고 능력 있다는 재주가 뛰어난 천재들이 온갖 탐욕을 다 채우고 교만하게 사람 위에 군림하고 앉아서, 진실로 세상을 위해, 정직한 마음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헌신하여 일한다고 하는 그것을 ‘거짓된 덕’이라고 단박에 꿰뚫어 비난하며 세상을 농단하는 사특한 가짜라고 사납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장자는 응제왕 혼돈칠규(混沌七竅) 편에서, 중앙에 사는 혼돈이라는 왕이 남해의 왕 숙과 북해의 왕 홀을 만나 잘 대접해 주자, 그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숙과 홀이 얼굴에 구멍이 없는 혼돈에게 눈·코·입·귀 등 일곱 개의 구멍을 하루에 하나씩 뚫어 주었는데 칠일 째 되는 날 죽고 말았다고 적었다. 일곱 개의 감각기관에서 맹렬히 달려드는 세속의 쾌락과 욕망은 결국 모든 감관을 닫고 무심무아(無心無我),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에 노니는 혼돈 왕을 죽게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속의 탐욕과 쾌락에 젖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포악한 폭군의 정치, 저 찬란하고 화려한 무수한 가짜들의 거짓을 장자는 지적하고 있음이리라!

그러기에 장자는 신인무공(神人無功), 성인무명(聖人無名), 지인무기(至人無己) 라고 했던 것이다. 공도, 이름도, 자기도 잊어버린 무아의 경지, 불가(佛家)의 아공법공(我空法空)의 경지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 공적영지(空寂靈知)에 노니는 진인(眞人)의 경지에 이르고서야 비로소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의 자격(應帝王)’이 있음을, 일평생 자급자족하며 헌 누더기를 덕지덕지 기워 입고, 아내가 죽자 고난의 세상을 버리고 비로소 근본자리로 돌아갔다며 장구를 치고 춤을 추며 즐거워했다는 장자는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중국에서 온 당시의 풍수지사(風水地師)는 명당에 무덤을 쓰고 큰 인물 따위를 바랐던, 공(功)과 명(名)과 기(己)를 향한 추저분하고 사사로운 세속의 허(虛)와 온갖 티끌들을 찰나에 문득 뛰어넘어버렸기에, 장자가 말한 흡사 미치광이 접여처럼 하늘을 우러러 호방하게 앙천대소(仰天大笑) 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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