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5화>명당과 아기장사 (21)응제왕(應帝王)
<제5화>명당과 아기장사 (21)응제왕(應帝王)
그림/김신정(경북대 미술대학 졸업)

그림/김신정(경북대 미술대학 졸업)

기축옥사로 인하여 정언신·최영경·정개청·조대중 등 뛰어난 유학자를 비롯해 천여 명이 넘게 학살당했다. 더구나 당시 정철은 호남의 유생 정암수를 사주하여 이산해와 유성룡까지 제거하려 했다하니 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칼날을 무작위로 휘둘렀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왕조의 무궁한 안녕을 위하여, 선조의 영원한 권좌를 위하여, 머리 좋아 공부 잘해 과거에 급제하고, 명문장가라고 재주가 뛰어나 승승장구하던 정철은 결국 소인배들이나 부러워할 그 빛나는 재주로 선조의 부추김 아래 자신의 정적(政敵)들까지 모조리 학살해 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잔인하고 억울한 정여립의 기축옥사 사건이 지나고 3년 후 임진왜란의 피바람이 몰아닥쳤으니 당시의 백성들의 참상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온 풍수도사가 ‘조선은 인물이 나면 길러 크게 쓰려하지 않고 왕조를 모반할 놈이라고 모함하여 싹도 자라기도 전에 죽여 버린다.’라고 했던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닌 듯싶다.

그리고 김씨 집안의 아기장사도 결국 뜻도 펴지 못하고 어려서 죽어야 했지 않은가! 1592년 임진왜란 후 조선왕조는 1910년 한일합방까지 300년을 더 존속했으니 백성이 아닌 왕조와 권력가를 위한 나라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당시 풍수지사였던 중국인이 평생 풍수지리를 공부하며 명당을 찾아 조선 땅까지 와서 앙천대소(仰天大笑)하며 깨달아 안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은유의 천재로 불리는 도가(道家)의 장자(莊子) 내편 응제왕(應帝王) 편을 보면 ‘노담과 양자거 이야기’가 나온다.

양자거가 노담을 만나 ‘여기 한 사람이 있는데 재빠르고 굳세며 사물의 도리에 밝고, 도를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밝은 왕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담이 ‘그런 사람을 성인(聖人)에 견주면 천한 일을 하는 재주꾼과 같아 몸을 지치게 하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자다. 가령 호랑이나 표범의 무늬는 사냥꾼을 불러들이고, 원숭이의 날램이나 살쾡이 잡는 개는 줄에 매이게 된다. 이런 자를 밝은 왕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라고 답한다.

장자는 노담의 말을 통해 실상을 완벽하게 뒤집어 버렸다. 재빠르고 굳세며 사물의 도리에 밝은 그런 뛰어난 자를 감히 ‘천한 일을 하는 재주꾼에 불과한 자’라고 마음껏 비하 하면서, 그런 뛰어난 재주가 제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사냥꾼을 불러들이는 호랑이나 표범의 무늬로, 원숭이나 개가 가진 그 재주로 인해 줄에 매이게 됨에 비유하였다.

아기 장사나 김덕령 장군이나 이순신 장군은 그 뛰어난 재주 때문으로 결국 고초를 겪었고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숲속의 곧은 나무는 반드시 목수의 칼날에 일찍 베이고 마는 것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못생긴 나무가 천수(天壽)를 누린다는 것을 장자는 말하고 있다.

장자의 이런 도가의 견해에 대하여 맹자는 ‘아무 하는 일 없이 오래 살기만을 바라는 무리들’이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유가(儒家)를 신봉한 웅변의 천재, 의(義)가 출중했던 맹자는 ‘인간의 길을 가다가 요절해 죽어도 좋고, 어떠한 불행을 당해도 좋다.’고 했으니 의당 그러했을 것이다. 아기 장사나 김덕령 장군이나 이순신 장군은 어떠한 개인적 불행이나 고초를 당하더라도 시대의 정의와 자신에게 주어진 인간의 길을 충실히 가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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