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5화>명당과 아기장사 (20)피바람

<제5화>명당과 아기장사 (20)피바람

그림/정경도(한국화가)
그림/정경도(한국화가)
그럼에도 김덕령 장군은 자신이 모반을 꾀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다가 결국 고문으로 인한 장독으로 옥사(獄死)하고 말았다. 의병장 김덕령 장군은 마치 자신의 미래에 닥칠 참혹한 불행을 예견이라도 한 듯 숨진 용마를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산천초목이 모조리 불타 없어지고 백성이란 백성은 모조리 죽어 나가야했던 피비린내 나는 임진왜란의 처참한 전쟁을 예고라도 하는 듯 어디선가 용마의 슬픈 울음소리가 무등산을 메아리쳐 울리는 듯 했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조선을 침략한 왜구를 토벌하여 죽이는 것보다도 자신의 왕권과 왕조에 반역하는 일당을 먼저 붙잡아 죽이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조선이 낳은 세계적인 해군장군 이순신조차도 한창 왜군과 전쟁 중인데도 모함을 받고 붙잡혀 가서 갖은 고문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았는가! 당시 이원익 대감의 치열한 변호가 아니었다면 이순신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하였을 것이다.

“봄 산에 불이 나서 못다 핀 꽃 다 타 죽는다! 저 산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에 연기도 없는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의병장 김덕령 장군은 신경행의 무고로 투옥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죽기 직전에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노래한 위 시를 남기고 끝내 죽고 말았다. 당시 유성룡 조차도 김덕령 장군의 억울함을 말하지 않았다하니 조선이 낳은 불세출의 의병장 김덕령 장군은 조선을 침략한 왜구와 싸워 나라와 백성을 목숨을 걸고 지켰는데, 억울하게 이 나라의 왕 선조라는 당시의 임금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긴 선조 당시, 임진왜란 3년 전 기축옥사 때도 가사문학의 거장이라는 송강 정철을 앞세워 ‘천하(天下)는 공물(公物)이지, 왕 한사람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세계 최초의 공화주의자(共和主義者) 정여립과 관련한 인사들을 모반을 꾀했다는 이유로 색출해 모조리 학살했다. 당시 동인의 영수 나주시 산포면 등수리 출신의 이발이 정여립과 서신을 교환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학살당했고, 그의 동생 이길, 팔순노모에 세 살짜리 아들까지 정철은 죽여 버렸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이러한 것들은 정철과 송익필이 선흥복을 회유해 꾸며낸 것이라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율곡 이이가 서인의 정철과 동인의 이발을 화해시키려고 서로 만남을 주선한 자리에서도 정철은 이발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하니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사람은 그가 가진 뛰어난 재주보다도 덕(德)이 부족하고 인품이 모자라면 남들이 우러러보는 그 빛나는 재주로 온갖 이기적인 탐욕을 다 채우고, 간악한 악행을 알게 모르게 일삼다가 마침내는 자신조차도 망쳐 버리는 것인데, 그의 이름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살아남음은 아마도 지금도 그를 잇는 후발 세력들이 이 나라의 권력과 지위와 재물을 끝없이 장악해 온 탓이거나, 온갖 잔인한 악행보다도 권력과 지위와 재물 그리고 하찮은 재주 나부랭이를 더 숭상해온 뿌리 깊은 관료주의 그리고 그에 편승한 인간적 사고력이 결여된 어리석은 무지렁이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사 시류 탓이 아닌가도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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