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126) 화광동진(和光同塵)

<제4화>기생 소백주 (126) 화광동진(和光同塵)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그래요 서방님! 항상 사방에서 날카로운 칼끝이 노리는 위태로운 자리에 연연하여 돈과 지위와 권력에 취해 자신의 얄팍한 재주를 뽐낸 사람치고 사람다운 사람 없었고, 그 끝이 좋은 자를 본적이 없지요. 이깟 상주목사자리! 이런 것이 만고(萬古)의 화근(禍根)덩어리입니다. 미련 없이 어서 버려야겠습니다! 참으로 서방님이십니다!”

소백주가 망설임 없이 낭랑한 목소리로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김선비는 그날부로 상주목사 자리를 초개(草芥)처럼 내팽개쳐버리고 스스로 야인(野人)이 되어 소백주와 함께 흔적 없이 유유히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날 이후로 그 누구도 그들을 다시 본 자가 없었다고 한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 천한 기생으로 태어나 그 시대 상류층 즉 관리나 양반에게 술과 노래와 몸을 팔다가 세상과 인간 삶의 허상을 깨닫고 사내를 구한다는 방을 내다 붙이고 자신이 원하는 사내를 만나 사랑을 하며 살고 싶었던 소백주,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과거시험을 보았다가 낙방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뇌물을 바쳐 벼슬을 사고 싶었으나 그것마저 좌절되어 마침내 초라하게 낙향하여야 했던 타락한 김선비, 그 둘은 우연히 운명처럼 만나 부조리한 세상의 허상을 깨달아 알고 그것을 극복해 마침내 뜻하는 바를 손에 넣었다. 온갖 수모와 천대와 깊은 고통을 감내해내며 지혜와 용기로 모순된 현실을 당당하게 타개해 냈기에 마침내 목적하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찰나에 내버렸다. 세속의 권력과 지위와 돈에 물들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쉽게 해낼 수 없는 것이 내다버리는 것이다.

김선비가 이정승이 임금을 움직여 상주목사라는 벼슬자리를 내려주어 그 자리에 올라 소백주와 함께 상주 관아에 살며 훌륭한 목민관이 되어 가난하고 억울한 백성들을 구제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정치를 하고 그 대가로 관록을 받아 챙겨먹으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또 만천하에 그 이름을 드날려 남겼다고 한다면 그러한 삶이 바로 세속의 속인들이 바라는 행복한 삶일 것이다. 속인들이야 부귀영화와 권력과 지위를 누리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비나 소백주가 그러한 삶의 세속적 즐거움에 머물러 안주해 버렸다면 그들은 별것도 아닌 개인적인 원한을 풀고 소아적 이상이나 꿈을 달성한 자들에 불과하고 말았을 것이다. 상주목사 자리에 앉아서 관리로서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도 기생 소백주를 아내로 삼아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의 최종목표였다고 한다면 김선비나 소백주는 절대로 그 자리를 그리 쉽게 내려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선비는 그것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유가(儒家)에서 이상적으로 바라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으로 어지러운 세상에 출사하여 나가 이민위천(以民爲天 )의 정신으로 세상을 평정하여 바르게 하려는 선비정신 그것을 뛰어 넘어서 노자가 말하는 도가(道家)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세계를 몸소 체득하여 실현함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신의 피나는 노력과 뛰어난 재주로 마침내 얻어낸 빛나는 것을 스스로 내버리고 세속으로 내려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속인들과 함께 섞여 살면서 그 중생들을 교화해 내는 무아(無我)를 증득해 실현하는 불가의 부처나 보살이 보살도를 행하는 경지가 아니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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