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125) 항룡유회(亢龍有悔)

<제4화>기생 소백주 (125) 항룡유회(亢龍有悔)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허허! 그토록 치밀하게 물샐틈없이 방비를 해놓으셨다니 과연! 그대는 조선 최고의 여인 소백주올시다! 끊임없는 음모와 반란, 배신과 변란 그것이 인간사 권력의 속성이지요. 물론 그런 참혹한 순간이 오더라도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한다면 내 두려울 것이 없겠습니다마는 나보다 훌륭한 관(官)이 많은데다 또 이 자리가 욕심이 난 자들이 많을 것인데 부러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선비가 찬탄해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서방님! 정이 뜻이 그러시다면 조상님께 물려받은 전답도 다 되찾았고, 벼슬자리에도 앉아 보았으니 소원은 다 풀었습니다. 역시 제가 서방님을 제대로 본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돈에도 벼슬에도 미련이 없으시다니 이제 떠나야겠지요……그 할미가 보낸 사람이 이정승이 ‘김 아무개 이놈 찢어죽일 놈!’ 하고 가끔씩 혼잣말을 하며 이를 부득부득 가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했다하더이다! 그래서 벌써 여기보다 더 깊은 산중에 아무도 몰래 은밀히 허름한 집을 사 놓았지요. 인연 없는 것은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빠를수록 좋지요. 잘하셨습니다. 서방님께서는 아무래도 선비의 길을 가셔야지요.”

소백주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부인! 주역(周易)에서 항룡유회(亢龍有悔)라고 했지요. 권력의 끝 정점에 오른 자는 반드시 후회 있다고 했습니다. 공자께서 건괘(乾卦) 초구(初九) 잠룡을 말할 때 ‘용덕(龍德)을 갖추고 있으면서 아직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을 말한다. 세속에 영합하여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며, 명성을 구하지도 아니한다. 세상에 숨어 살아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올바름을 세상이 몰라주어도 고민하지 아니한다. 태평한 세상이 되면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여 도를 행하고, 어지러운 세상이 오면 물러나와 도를 고수한다. 이것이 잠룡이다.(初九 潛龍勿用 何謂也. 子曰, 龍德而隱者也. 不易乎世 不成乎名 遯世無悶 不見是而無悶 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其不可拔 潛龍也)’라고 했지요. 그러나 상구(上九) 항룡에 대하여서는 ‘절정까지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높아 교만하기 때문에 민심을 잃고, 스스로 너무 높아 착한 인사들을 낮은 지위에 두게 되므로 보필을 받을 수 없다. 이러면 무엇을 하여도 후회를 하게 된다(子曰, 貴而無位 高而無民 賢人在下位而無輔 是以動而有悔也) 시절을 만나지 못해 초야(草野)에 묻혀 사는 뜻 있는 선비는 잠룡이겠으나 세상에 출사하여 지위를 얻은 자는 항룡이 아니겠습니까! 내려와야 할 때 내려올 줄 모르고 버티는 자는 그 교만으로 인해 반드시 천하의 민심을 잃고 후회할 일을 만나게 된다고 하였지요. 서경(書經)》에서도 성공한 곳에는 오래 머물지 말라(成功之下 不可久處)’고 했습니다. 월나라의 구천을 도와 오나라의 부차를 멸망시킨 명재상 범려 또한 월왕 구천을 떠났기에 살아남았지요. 한고조 유방을 황제에 오르게 한 장량은 권력의 중심에서 늘 비켜나 은둔해 있었기에 자신을 보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러날 줄 몰랐던 문종은 결국 구천에게 죽었고, 한신 또한 유방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요……부인! 이 상주목사 자리는 소백주 그대의 재치와 지혜로 탐욕에 빠진 마귀와 같은 권력자 철면피 이정승을 천하의 신술(神術)로 제압하고 움직여 억지로 얻은 자리입니다……으음! 그러고 보면 삼일도 길지 않겠습니까?”

김선비가 차분하게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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