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중 변호사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미나리’는 Wonderful
강신중(법무법인 강율 대표변호사)

지난 3월 15일 발표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서 최종 6개 부분에 지명되며 세계 영화제에서 91관왕 수상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미나리’는 삶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선 이민자 가족의 역경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 한국어로 표현되지만 감성적으로는 세계어로 통역 가능할 보편적인 정서를 펼쳐내고 있다.

영화는 한국·한국계 배우들이 한국어로 서사를 이끌고 있고, 화투나 멸치, 한약, 미나리 등 한국적인 것들이 등장하여 ‘미나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다룬 미국영화임에도 한국영화처럼 느껴지게 한다.

‘가족애’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주제를 지닌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가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은 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온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이 영화에 녹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나리’는 개인적 체험을 담담하게, 차례대로 서술하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소재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지만 가족이라는 집으로 건축한 방식은 의식적이고 투명하며 철저하게 그 의미를 구조화시키고 있다. 미국 사회의 계급성, 이민의 기억 등을 상징적으로 배치한, 시대를 투사한 조감도에 가깝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절, 젊은 부부는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이주한다. 처음 간 곳은 캘리포니아였지만 아마도 이 가족은 캘리포니아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은 남부 시골인 아칸소 주 광활한 땅에 바퀴 달린 트레일러 하나 박아 놓고 농장을 가꾸기로 결심한다. 병아리 감별사라는 기술적으로 먹고 사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던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심장병이 있는 아들 데이빗(엘렌 킴)을 데리고 병원도 없는 시골마을에서 살 수 없어 불만이 가득하지만,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해내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고집 피우는 남편을 말릴 재간이 없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외할머니 순자(윤여정)가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딸네 집으로 온다. 데이빗의 눈에 할머니는 이상적인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요리도 하지 않으면서 몸에 좋은 것은 자기가 먹고, 험한 어투에 남자 팬티를 입고, 냄새도 안 좋다. 미국에서 태어나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영어를 구사하는 어린 데이빗과 한국 할머니의 사소한 문화적 충돌은 웃음을 자아내고, 한국식으로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의 방식은 때론 뻔뻔하지만 의의로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순자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혼자 몸으로 딸을 키워 시집까지 보냈다. 그래서 집안일에는 서툴지만 가족을 지키는 방법은 안다. 그녀가 한국에서 가져온 건 고춧가루, 밤, 보약, 쌈짓돈뿐만 아니라 내 새끼를 키워낸 깊은 생명력이다. 그 상징이 ‘미나리 씨앗’이다. 미나리는 제이콥이 밤낮없이 일해서 일군 농작물이 다 타서 사라질 때도 홀로 싱싱하게 자란다.

어디에 뿌려놔도 잘 자라고, 주변 물을 맑게 정화시킨다. “아버지가 만든 농장은 망했지만, 할머니가 뿌려둔 미나리 씨앗은 잘 자랐다”는 것 역시 아이작 감독이 겪은 실화이다.

묵묵히 엄마의 손을 거드는 의젓한 큰딸 앤(노엘 조)까지 다섯 식구의 일상은 이민자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모습이 아니라, 어떤 가족이라도 경험함직한 보편적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영화에‘모니카의 가족은 순자가 뿌린 미나리 씨앗으로 미나리를 풍성하게 거둔 뒤 팔아 부자가 되었습니다’라는 식의 결론은 없다. 그저 제이콥과 데이빗이 할머니가 뿌려둔 미나리를 찾아가는 걸로 영화는 끝난다. 미나리의 특징 중 또 하나는 땅에 심고 1년은 지나야 잘 자란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신보다 자신 이후의 딸과 아들 세대가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랐던 부모의 마음도 담겨 있다.

‘미나리’에서 ‘기생충’이 보여주었던 긴장감 넘치는 재미와 예술적 성취를 기대하기보다는 작고 소중한 일상과 꾸며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여주는 잔잔한 에너지에 감탄할 것이다. 비극과 고통이 끊이지 않는 이 가족의 자포자기한 모습에서 오히려 희망을 발견하며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 머나먼 이국땅 강가에 가득 핀 미나리의 생명력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을 가족을 바라볼 수 있다.

80년대 레이거니즘이라는 신자유주의가 출발한 시대 속에서 개인주의와 경쟁제일주의가 극단으로 흐르던 미국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불태운 서부극의 주인공 같은 아버지와 가족의 울타리가 되었던 엄마,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일상의 유희를 즐길 줄 알았던 할머니, 그리고 그들에게 거울이 되었던 아이들. ‘미나리’의 가족은 바로 우리의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미나리는 여러해살이풀로 어디서나 잘 자라는 생명력 강한 채소이자 약용식물이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게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으로 고지방 식단으로 인해 산성으로 변한 체질을 중화하는 데 효과가 있단다. 감독이 미나리의 이러한 식물적 특성을 간파하여 제목을 정했는지 모르지만 우연이라도 딱 어울리는 제목이다.

거리두기와 자가 격리, 안전제일이 일상화된 팬데믹 시대에 영화 ‘미나리’는 마음의 언어(a language of the heart)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가족의 소중한 과거를 소환하고 있다.

순자의 “미나리는 wonderful”이라는 외침은 한국어도, 한국식 영어도 아니지만 진심이 담긴 표현이라 누구나 알아듣고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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