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이천서씨(利川徐氏) 공도공파 소호종가 <55>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인의(仁義) 겸비한 재상 7명 배출…고려 명문가
사슴 구한 시조설화의 가르침
80만 거란침략 맞선 서희 활약
도량 갖춘 명신들 가풍 만들어
기록유산 보존 선조 정신 계승

소호정 전경

전남 영암 서호의 영산강 줄기에는 인의예지를 품성으로 국난극복의 기둥이 된 명재상들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룬 신풍마을이 있다. 지금은 영산강 하구둑이 준설돼 바다와 멀어졌지만 아직도 월출산 앞 너른 들을 바라보는 소호정이 옛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벼슬에 나가면 청백하고 부지런했으며 낙향해서는 후학을 양성하며 덕을 베풀고 살았던 이천서씨 공도공파 소호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측은지심이 가문 부흥 열쇠
한국의 서씨(徐氏)는 신라 말 아간을 지낸 서신일(817~902)을 시조로 모신다. 그가 경기도 이천 효양산의 서아성에 희성당을 짓고 은거해 본관을 이천으로 이천서씨가 세계를 잇고 있다. 달성, 장성, 부여, 대구 등 본관은 달라도 대부분의 서씨는 이천서씨의 별파로서 분관했다는데 이견이 없다. 역옹패설(이제현 저)에 전하는 서씨 시조 서신일 설화가 가풍의 일면을 보여준다. 농사일을 이끄는 서신일 앞에 화살 꽂힌 사슴이 뛰어와 쓰러졌다. 불쌍히 여긴 그는 화살을 뽑고 상처를 살펴 숨겨주고 사냥꾼의 추적을 피하게 했다. 그날 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그 사슴은 나의 아들인데 그대에 힘입어 죽음을 면했으니 마땅이 그대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재상이 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부인을 사별해 후사가 없는 80 노령의 서신일은 형제의 인정 때문에 조카 입양도 거절했었다. 제자들의 간곡한 권유로 배필을 맞이한 그는 사슴 일화 이후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서필이다.

◇서희 등 7대 이어 명재상 배출
서필(901~965)에 이어 서희, 서눌, 서정, 서균, 서공, 서순 등 7대 재상을 배출해 고려 명문가가 됐다. 서필은 근검하며 직언하는 재상으로 네 임금을 섬기며 대광내의령에 이르렀고 광종 묘정에 배향됐다. 3세 서희(943~998)는 문과 급제해 내의시랑으로 송나라에 가 국교를 맺고 돌아왔고, 거란 80만 대군의 소손녕이 침입하자 중군사로 출전해, 담판에 나가 전쟁 없이 철군시키고 오히려 강동6주를 회복했다. 성종묘정에 배향됐다. 4세 서눌(?~1041)은 문과 급제해 삼중대광내사령을 역임하고 정종 묘정에 배향됐다. 그의 딸이 현종비 원목왕후로서 가문을 빛냈다. 그의 동생 서유걸(?~?)은 중추원 우승선을 거쳐 상서도성좌복야를 역임했다. 서유걸의 아들인 5세 서정(?~?)은 요나라에 다녀와 병부상서로 변방 방비에 힘썼으며 중서시랑평장사, 상주국에 올랐다. 6세 서균(1060~1132)은 관대한 성품으로 음관 벼슬에 나가 홍례(위산) 등지의 수령으로 선정하고 판장작감사를 역임했다. 7세 서순(?~?)은 청렴 강직한 도량을 겸비해 서북면병마사, 예부상서 동지공거, 추밀원사를 역임했으나 무신 난에 화를 입었다. 11세 서염(1225~?)은 대관서영을 지냈고, 서진(1280~?)은 판내부시사를 역임했다.

◇공도공 후손 서희서 소호종가 열어
14세 서선(1367~1433, 시호는 공도)은 현령을 지낸 서원(1311~1372)의 차남으로 두문동 72현 원천석에게 공부하고 문과 급제해 세자시강원좌문, 집현전 직제학 등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다. 두 번이나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부지런한 명신으로 알려지고 공도공파를 열었다. 20세 서숙명(1457~1529)이 해남으로, 다시 그의 손자 서홍필(1517~1600)이 영암 서호 신풍마을로 입향했다. 23세 서희서(1555~?, 호는 소호)는 사마시에 입격하고 제원도찰방을 역임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몽성과 함께 해암포(영암)전투에 참전했다. 그가 소호종가를 열고 소호정을 건립했다. 24세 서건(1576~?)은 경덕궁 가위장, 강화별장, 전라도병마우후를 역임하고 익사원종공신녹권을 하사받았다. 그의 아들 서상우(1629~?)는 무과에 급제하고 정의현감 위원군수 등을 역임했다. 15대를 이어 신풍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종가는 교지, 녹권, 분재기, 호적단자 등 기록물들을 보존하고 소호정, 죽산재 등을 관리하며 선현의 학덕과 전통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소호정 현판
소호정 전경2
죽산재
죽산재 전경
종가 안채
서희서 생원입격 교지와 찰방제수 교지
분재기
서건의 익사원종공신녹권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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