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계약직원, 상사 횡포에 ‘농협맨’꿈 무너졌다
농협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도 보험 가입 할당
분기별 실적 쌓기 관행에 업무 스트레스 가중
주말엔 ‘남친 만날 거 잖아’핀잔…근무 강요도

농협맨을 꿈꾸며 캐셔로 열심히 근무하던 20대 여성이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로 인해 모든 목표를 접고 말았다. 사진은 목포농협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직매장 전경.

“농협에서 제 꿈과 미래를 걸었는데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전남 목포농협이 운영하는 한 로컬푸드직매장에서 캐셔(2019년 11월 계약직 입사)로 일하고 있는 한 20대 여성 A씨가 그간 자신이 겪은 일들을 한풀이 하듯 건넨 말이다. “농협맨이 되고싶다”는 열망으로 똘똘 뭉쳐있던 A씨가 모든 것을 내 팽개칠 정도로 내려놓은데는 이곳에서 경험한 온갖 갑질과 이로 파생되는 인격모독 등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을 온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평생 농협인이 되겠단 목표는 사회의 냉엄한 현실속에 눈 녹듯 사그러들었다.

◇보험 실적 압박

논란은 지난 2월께 A씨와 그 직원들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방에서부터 시작됐다. 해당 로컬푸드직매장 한 간부가 ‘보험 이벤트’ 란 제목의 목포농협에서 보낸 공문과 함께 “보험이벤트가 시작됐다. 실적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는 글을 게시하면서다. 1인당 추진건수 5건(로컬푸드 대상), 월 환산수수료(10만원)등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돼 있었다. 특이사항으로 계약직 및 파트타이머 등 정규직 직원이 아닌 경우도 추진건수 2건, 월 환산수수료 5만원을 충족시킬 것을 별도 명시했다.

A씨에게 이 상황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고 한다. 계약직임에도 실적 달성 요구 압박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서다. 이미 지난해 3만원 상당의 보험을 본인 명의로 들었는데 또 다시 보험을 강매당하는 그림이 그려지자 그야말로 멘붕(정신적 충격을 의미하는 은어)에 빠졌다는 것이 A씨 주장. 액수가 상대적으로 크진 않지만 실적을 강요하는 조직 분위기 자체가 두려워서다.

그리고 이는 곧 현실이 됐다. 매일 간부들은 돌아가면서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식의 말을 했고, 회사 단톡방에도 누가 보험을 가입 했는지를 묻고 확인하는 등 확인사살(?)까지 연일 이어졌다. 보험 이벤트가 힘없는 직원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꼴이다.

A씨는 부모가 종신보험 등 실생활에 필요한 보험들을 여럿 가입해 줘 굳이 필요도 없는데 또 다시 보험을 가입하는 것이 아까워 차일피일 보험 가입을 미뤘다고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감당 안되는 조직 내 갑질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목포농협 로컬푸드직매장 내 캐셔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모습.

◇숨통 조이는 갑질 ‘눈물’

일반적으로 마트는 업무 특성상 보통 오전과 오후 시간대를 나눠 직원들간 상황을 고려, 평일과 주말 근무조를 정한다. A씨가 근무하고 있는 마트의 경우도 캐셔팀원 전체 6명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근무 중이다.

하지만 유독 A씨는 평일과 주말 근무를 병행하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거의 대부분을 주말 근무조에만 편성됐다.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근무조를 바꿔달라’는 요청도 수차례 묵살했다. A씨가 항의하자 ‘평소 거짓말을 많이 했다. 남자친구와의 (주말)만남과 같은 개인 일정에 맞춰줄 수 없다’는 등 지극히 사생활에 관련된 이유를 들며 거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엄연히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되는 사안이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더욱이 A씨에게 지폐를 하나하나 특정 방향으로 가지런히 정리해 고객에게 돈을 계산토록 하는 등 선뜻 이해되지 않는 지시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모든 상황들은 A씨 직속 상사에 해당하는 한 여성팀장에 의해 이뤄졌고, 당시 점장(현재 목포농협 본점으로 자리 이동) 등 마트 일부 간부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는 것이 A씨 입장이다. 계약직이란 한계 속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A씨는 결국 지난 2월 말 버티고 버틴 보험을 추가로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부작용 양산하는 농협 관행

농협 전·현직 관계자들을 통한 이같은 보험 가입 압박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라는 것이 한결같은 주장이다.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이란 인식 뒤에 가려져 있을 뿐 업무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농협에서 10여년 째 근무하고 있다는 한 직원은 보험 등 매 분기마다 적용되는 실적 쌓기 관행 때문에 사직서를 내는 선·후배 동료들이 상당수라고 증언했다.

과거엔 (단위)농협 등 각 지점에서 자체적으로 보험 등 금융상품을 판매했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농협중앙회를 중심으로 신용부문(은행권 전반)과 경제부문(마트 등 유통·제조·식품)을 나뉘어 농협금융지주, 농협경제지주 등 자회사를, NH농협은행, NH투자증권 등과 같은 손자회사를 각각 만들며 법인별 세분화 작업을 추진했다. 이로인해 표면적으론 농협중앙회와 지역 단위 농협 사이의 금융업무가 엄격히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보험상품 등이 새로 개발되면 농협중앙회서 떨어져 나온 농협생명 및 농협손해보험(농협보험)에서 각 지역 단위 농협에 이를 판매토록 했다는 것이 내부 목소리다. 보험 판매를 위한 교육까지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직원 1인 기준 건당 최소 3~5명 가입’과 같은 구체적 수치도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달성된 개별 실적들은 인사 고과에 반영된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세우기를 하고 잘하는 직원에겐 상품권 및 기프트 카드 등 성과금과 유사한 혜택을 주고 경쟁에서 뒤쳐지는 직원들은 소위 능력없는 것으로 매도하기 일쑤다. 이 모든것은 보험판매가 농협의 가장 큰 수익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A씨가 경험한 여러 상황들은 농협이 가지고 있는 제도적 한계와 이에 대한 책임을 힘없는 계약직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모순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문제가 된 마트 한 관계자는 “지난 8월부터 A씨가 마트 내부에서 자체 운영하는 주말근무 및 휴일 루틴을 깨고 종종 개인일정을 이유로 주말에 쉬는 일이 있었다”라며 “당초 쉬려는 이유가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난 사례가 있어 내부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고, 이에 주말 휴무를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마트 관계자는 “보험문제의 경우 조직 전체가 함께 수익을 내기 위한 차원일 뿐 압박 수단은 아니다”며 “강요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중·서부취재본부/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