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목포대도서문화연구원 공동기획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이야기
<14> 섬과 육지의 아름다운 동거, 고려 말엽 ‘교군(僑郡)’

‘교군’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 무안반도 통합 논의
3개 시·군 지역공동체 넘어 역사 공유 명분
‘한국 섬 진흥원’ 유치 계기 재통합 청신호
‘지방 소멸’악재 극복할 유일한 대안 제기

고려말엽 왜구 침탈로 섬 지역 피해가 커지자, 서해와 남해, 연해지역에서 교군의 사례가 확인된다. 이에따라 고려 조정은 섬 지역민들을 내륙으로 이주시켜 임시거주토록 했다. 이는 흑산도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신안 섬일대 모습. /위직량 기자 jrwie@hanmail.net
지도에서 영암 영역에 진도(珍島)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고려 말 진도현이 영암 땅에 옮겨 거처한 교군(僑郡)의 흔적이 500여 년 뒤에 제작된 19세기의 대동여지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한정훈 교수 제공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서 원래 살던 고을을 벗어나 집단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고을을 교군(僑郡) 혹은 교현(僑縣)이라 한다. 한국사에서는 고려 말엽 왜구의 침탈로 피해가 컸던 서해와 남해의 도서 및 연해 지역에서 교군의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고려 조정은 이들 지역이 왜구의 침탈에 취약하였기 때문에 내륙지역으로 이주시켜 임시로 거주하도록 하였다.

‘교군(僑郡)’의 역사적 경험

이러한 교군의 사례는 경상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 보다 왜구의 피해가 극심하던 전남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된다. 고려시대 전남지역의 진도·압해도·장산도·임자도에는 진도현·압해현·장산현·임치현의 도서 군현이 설치되어 있었다. 왜구의 침탈이 극성이던 고려 공민왕 재위 시기에 진도현은 영암 땅으로, 압해도에 자리한 압해현과 장산도의 장산현은 각각 나주 땅으로 그리고 임자도에 있던 임치현도 영광 땅으로 옮겨가 더부살이를 하였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 속에서 흑산도 주민들은 섬을 빠져나오면서 왜적 포로를 바친 공적을 인정받아 나주 영산강변에 옮겨오면서 영산현(榮山縣)이라는 새로운 고을을 만들었다. 교군의 현상은 도서뿐 아니라 연해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장흥부는 강진의 수인산성과 철야현(나주 봉황면)으로, 고흥현은 보성 땅의 조양현(보성군 조성리)으로 각각 이주하여 임시로 거처하였다.

광주·전남이라는 지역공동체의 관점에서 ‘교군’의 역사를 보면, 이웃한 고을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준 따뜻한 배려를 넘어 주변 지역과의 공생을 통해 더 큰 발전을 도모한 역사적 경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안군과 목포시의 동거

그로부터 600여 년이 지난 20세기 후반과 오늘날에도 섬과 연해 지역의 아름다운 동거의 모습, 그리고 더 큰 그림을 그리려는 논의가 한창이다. ‘섬들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신안군은 1969년에 무안군에서 분리하여 탄생하였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신안군은 인접한 목포시와 무안군에 의존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것은 원거리의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교통 여건이 불편하고 전통적인 행정 중심지가 부재하여 생활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신안군 공공기관과 사회단체들이 신안군 관내가 아닌 목포·무안지역에 위치하였다. 신안군청이 2011년까지 목포시 북교동에 위치하였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도 신안군 관광자원개발사업소, 신안군교육지원청 등 몇 곳의 공공기관과 신안군산림조합·신안문화원·대한노인회 등 각종 사회단체가 여전히 목포 시내에 자리하고 있다. 언뜻 보면, 신안군의 공공기관과 사회단체가 신안 관내가 아닌 목포 시내에 위치하는 것이 이상할 법도 하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신안군의 탄생 과정뿐 아니라 고려 말엽 교군의 경험 이래로 전남의 도서 지역민과 인접한 고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동거를 떠올려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해되기도 한다.

행정통합 논의 그리고 ‘교군’

목포·무안·신안의 행정통합 논의는 지난 30여 년간 수차례 제기되었다. 그것은 3개 시·군이 지역공동체를 넘어 역사 공동체의 뿌리를 공유하기 때문이고, 그 속에는 바다와 섬에 대한 지역민의 공유 의식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2020년에 또다시 신안군과 목포시가 통합을 합의하였다. 2021년 3월에는 신안군이 한국의 섬 정책을 총괄하는 ‘한국 섬 진흥원’ 유치를 목포시에 양보하면서 두 지자체의 통합에 청신호를 켰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목포시와 신안군 뿐 아니라 무안군과의 통합 논의로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 본다. 이러한 3개 시·군의 통합이 성사된다면, 진도군·해남군과 완도군·강진군 상호 간의 협력 방안도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수도권이라는 블랙홀로 인해 ‘지방 소멸’이라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에 지방 도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광주·전남도 상생과 균형발전을 위한 통합이 제기된 상태이다. 이러한 시기에 목포와 신안, 그리고 수많은 섬을 품은 전남과 광주의 통합 논의에서 도서 고을의 어려움을 인접한 육지 고을과 함께 풀어나갔던 ‘교군’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떠올려 봤으면 한다.

글/한정훈(목포대 사학과 교수)

정리/박지훈 기자 jhp9900@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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