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파평윤씨(坡平尹氏) 대언공파 윤동훈 종가 <47>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유서깊은 명촌에 은거한 충절가문
‘파평윤문’ 과거급제자 다수 배출
은거 적합한 산자수려 모평 입향
비옥한 토지 일구며 가학전통 계승
한옥 고건축·고문서 유물보존

종가 전경

전남 함평 해보천이 흐르는 너른 들을 앞에두고 ‘기산영수(중국 고대 현자가 은거했다는 절경지)’와 같다는 풍광이 둘러친 모평마을은 고려 때 모평현의 관아가 있었던 유서깊은 명촌이다. 뒷산 임천산의 대숲에서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천년샘과 월양산의 독수리 기운을 막아주는 고목 느티나무숲이 500년 동안 비옥한 토지를 일구며 집성촌을 이뤘던 파평윤씨(坡平尹氏) 가문의 한옥들과 어우러져 전통마을의 풍미를 자아내고 있다. ‘모평윤’이라는 별칭을 가진 파평윤씨 대언공파의 윤동훈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고려 건국공신 태사 윤신달 시조

파평윤씨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공신으로 삼중대광 태사에 오른 윤신달(893~973)을 시조로 모신다. 그가 경기도 파주 파평산 기슭의 용연에서 떠오른 옥함에서 나왔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혜종 때 동경(신라 수도였던 경주) 대도독으로 부임해 30년간 중책을 맡았다. 5세 윤관(?~1111)은 고려 문종 때 문과 급제하고 요나라에 파견돼 숙종 즉위를 알렸다. 그의 벼슬은 수태보·문하시중, 감수국사에 올랐고 예종 묘정에 배향됐다. 윤관이 별무반을 양성해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은 공으로 공신에 책록돼 영평현(파평) 개국백에 봉해졌기에 본관을 파평으로 하는 윤씨가 고려조·조선조에 무수한 인물을 배출하며 세계를 잇고 있다.

6세 윤언이(1090~1149)는 문과급제하고 예부시랑으로 송나라에 표문을 전하고 돌아왔으며, 문장으로 이름 높아 정당문학, 판형부사에 올랐고, 주역에 밝아 저서로 ‘역해’를 남겼다. 그의 아들 3형제가 과거 급제했다. 7세 윤인첨(1110~1176)은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 수태사에 이르고 서경유수 조위총의 반란을 평정해 광국공신, 감수국사에 올랐으며 명종 묘정에 배향됐다. 그의 아들 윤종악, 윤종함, 윤종양 삼형제도 과거 급제했다.

◇충절 지킨 윤길 모평에 입향

11세 윤보(1252~1329)는 충열왕 때 문과 급제해 성균감대사성, 서북면도지휘사를 거쳐 수첨의찬성사에 오르고 영평군에 봉해졌다. 그의 큰아들 윤계종(?~1346)은 충혜왕비 희비의 아버지로서 충정왕(고려 제30대 왕, 재위 1348~1351)의 외조부이고, 찬성사를 역임했다. 윤보의 둘째아들 윤안적(1269~1319)은 충정왕 때 과거급제하여 대언(승지와 같은 직책)을 역임하고 대언공파를 열었다. 15세 윤길(1368~1462)은 목은 이색에게 수학해 문과급제하고 한림학사를 역임한 고려말 문신이다. 충절을 지켜 조선 개국에 불참하고 벼슬하지 않았다. 계유정난 이후에는 사촌매제인 김종서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문이 원인이 돼 제주에 유배됐고 사면받아 돌아가는 길에 산자수려한 전라도 모평현에 터를 잡아 파평윤씨의 모평 세거가 시작됐다.

◇ 대사헌 윤자화 귀영재 유산 남겨

21세 윤형수(1521~1587)는 하서 김인후의 문인으로 참봉·선정관을 역임하고 임곡유고를 남겼다. 윤형수의 아들 윤해(1541~1597)와 신천강씨 부부는 정유재란 때 왜적의 칼에 희생됐는데 신천강씨가 남편을 해치려는 칼날을 두팔로 막아 잘려나가고 결국 부부 모두 처참하게 죽임당했다는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열부강씨정려가 건립(1812)됐다고 한다. 부부의 어린 두 아들 윤성립, 윤정립(1594~1683)을 보살펴 길러준 이 집안 노비 ‘도생과 사월’의 은덕을 기려 세워진 <충노비>가 전쟁의 참혹함을 이겨낸 시대를 기억하게 한다.

24세 윤은로(1612~1686)는 병자호란을 맞아 은봉 안방준과 의병을 일으켰다. 효자로 알려진 27세 윤동훈(1716~1770)이 대언공파 윤동훈종가를 열고 대대로 가학의 전통을 잇게 했다. 31세 윤자화(1825~1884)는 문과 급제하고 사헌부 지평을 거쳐 대사헌에 오르고 ‘귀영재유집’을 남겼다. 종가는 윤자화 과거급제 시권과 강서채점지(과목별 점수기록부)를 비롯한 유물들과 학문하며 영농했던 터전의 귀영재, 도천헌, 수벽사, 영양재 등 고건축물들을 보존하며 선조의 충절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영양재
수벽사 전경
윤해 장군 부인 신천강씨 정려와 충노비
귀영재 내부 대들보와 창문
대숲 속에 있는 안샘(천년샘)
도천헌
윤자화 과거급제 시권
윤자화 과거급제 점수표
귀영재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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